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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 사무엘과 엘리의 아들들의 영적 흐름

green2021.09.16 12:17조회 수 276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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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린 사무엘과 엘리의 아들들의 영적 흐름

 (사무엘 상 212,17,18,26)

 

12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17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18 사무엘이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 섬겼더라

26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지난 주 금요일은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산행을 나갔다가 왔습니다.

원래는 디스칸소 가든으로 갈 예정이였으나 코로나로 인하여

사전에 예매를 해야 하고 집단으로 갈 때는 5명이상은 안된다고 해서

포기해야 했습니다.

2번을 타고 올라가면 Angeles Crest Hwy 인데 깊은 계곡이 있습니다. 

그 곳으로 가기로 했습니다저는 나름대로 걱정을 했습니다.

급하게 장소가 변경이 됐지요?

꽃이 있는 정원으로 가려고 했는데 산 계곡을 가야 했기에

혹 불평이나 불만이 서려오면 어쩌나 했습니다.

특히 걷는 것이 불편하신 분들이 있기에 걱정도 됐습니다.

예정된 10시에 모였습니다.

교회 기도막사에서 큐티의 시간을 잠시 가졌습니다.

제가 설교를 했고 모든 분이 참여 하는 말씀과 삶의 교제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찬양이 뜨거웠고 통성 기도의 시간이 너무 좋았고

삶의 간증 시간에 나누어주신 말씀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저는 그때 다가 오는 흐름을 느끼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으로 이야기 하면 []이 좋았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영적 흐름이 좋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단 한 사람도 반론이 없었고 불평이나 탓하는 사람도 없었고

너무나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금 제가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은 [흐름]에 대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특별히 영적 흐름에 대한 분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누구에 대해서 어떤 문제에 대해서 흐름을 스스로 잘 살펴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파장이라고도 합니다. 파도치며 나가는 영향력의 흐름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 한 마디가 어떤 파장으로 전해 질질 살펴 보아야 합니다.

나의 반응, 나의 처세 나의 행동 하나 하나가 어떻게 파도치며 나가는지를 민감하게

스스로 보는 영적 분별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1장에서는 [한나][부닌나]의 흐름이 갈라집니다.

한나의 맥은 계속 이어지나 브닌나의 맥은 끊깁니다.

2장에는 [어린 사무엘][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의 흐름으로 갈라집니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게 되면 [다윗][사울]이 등장하면서 그 흐름이 갈라집니다.

사무엘 하에 가서 보면 성경은 말하기를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삼하3:1)

 

여러분 흐름은 있습니다. 이것을 맥이라고도 합니다. 맥은 있습니다.

지금 내가 어떤 흐름을 타고 가느냐?

지금 내가 어떤 맥을 따라 가느냐?

이것이 미래의 나를 어떻게 몰아가느냐?을 분별하게 될 것입니다.

신명기는 두가지의 흐름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합니다.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30:19,20)

 

오늘은 사무엘과 엘리의 두 아들의 흐름에 대해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엘리의 두 아들에 대해서 살펴 보겠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에 대해 말씀을 드립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2:12)

불량자란 뜻은 깡패나 양아치, 조직 폭력배란 뜻이 아닙니다.

[벨리알](Belial)이란 뜻입니다.

바알을 숭배하는 자란 뜻입니다. 영적 타락자를 칭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고후6:15)

그래서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한 자라고 했습니다.

이런 흐름은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는 증상으로 나타납니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2:17)

 

제물을 임위롭게 먹더니(2:14) 나중에는 삶은 것이

싫증이 났는지 생것으로 달라고 합니다.

왜 바비큐해서 먹겠다는 것입니다.(15)

그리고 나중에는 봉사하는 여성도을 건드리기 시작합니다.

성추행하는데까지 흐른 것입니다.(22)

결국은 이런 흐름이 어디까지 가는 줄 아시는지요?

영적 전쟁에서 대 참패을 당하게 만듭니다.

 

블레셋 사람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이었으며 11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4:10-11)

 

여기서 끝나지가 않습니다.

98세인 아버지 엘 리가 이 소식을 듣고 의자에서 일어나다가 휘청하다가

목이 부려저 돌아가십니다.(4:18)

그리고 비느하스의 아내가 산기가 차서 아이를 낳다가 죽게 됩니다.

이때 태어난 아이를 이가봇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죽게 됩니다.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 시부와 남편이 죽었음을 인함이라(4:21)

 

요즈음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 협박한다고 말합니다.

어느 분은 공갈치지 마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 말을 잘 안합니다.

그러나 분명이 말씀을 드립니다. 흐름은 있습니다.

육의 생각은 사망으로 가게 되여있습니다.

 

사무엘에 대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엘가나는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2:11)

이때 사무엘의 나이는 3살입니다. 젖뗀 나이입니다.

이 어린 것이 엘리 제사장 앞에서 경건을 훈련 받습니다.

그리고 조금 지나면서 스스로 경건을 훈련하고 있음을 목격하게 됩니다.

 

사무엘이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 섬겼더라(2:18)

이제 엘리 제사장이 빠졌습니다.

스스로 여호와를 섬기는 모습으로 영적 성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흐름입니다.

맨 처음에는 누군가가 옆에서 도와 주어야 합니다.

본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가면 스스로 앞서 가는 분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2:26)

여러분 설득력이란 것 아시는지요?

기도하는 것 만큼 삶의 구석수석이 변하야 하잖아요?

예배를 바르게 드리는 것 만큼 대인 관계가 이전보다는 더 바뀌어야 하잖아요?

말씀을 묵상하는 것 만큼 내 언어의 질도 바뀌어야 하지 않나요?

하나님 잎에 서는 것 만큼 사람들앞에서도 은총을 받아야 하지 않나요?

이것을 변화라고 하고 영적 성숙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의 자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과 사람에서 은총의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3:19)

하나님께서 그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는 것을

거꾸로 말씀을 드리면 사무엘의 말이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나님이 받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말에 대한 신중함입니다.

언어의 질이 더욱 거룩해 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헛된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319절의 말씀이 적용되게 한다면 큰일 날 사람 많을 것입니다.

아구 죽겠네.... 하는 사람 진짜 죽어 버릴 것입니다.

안돼 못해 큰일 났네..... 하는 사람이 진찌 못하고 안돼고 맨날 큰일만 날 것입니다.

험한 말 막말 거친 말 저주의 언어 이런 말이 자신을 묶는 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는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벧전3:10)

 

사무엘의 흐름을 계속 보기 바랍니다.

320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이 여호와의 선지자로 알아지게 됩니다.

321절에는 마침네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기 시작합니다.

41절에는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게 전파되니라고 한 것입니다.

 

이때 즈음 불레셋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 전쟁이 벌어 집니다.

그리고 엘리의 아들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지고 전쟁터에 나갑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빼앗기게 되고

엘리의 두 아들은 한날한시에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4:12)

 

이제 여기에서 몇 가지의 영적인 교훈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는 영적인 흐름은 실존한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이 단막극이 아닙니다. 장편소설과 같다는 것입니다.

순간 순간이 아니라 연속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니면 또 딴데로 가면 돼가 아니라 그 연속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그 흐름을 잘 살펴 보기 바랍니다.

내 안에 두가지의 흐름이 있습니다 사무엘의 흐름과 엘리의 두 아들이 흐름이 있습니다.

내가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는 전적 여러분의 몫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1:1)

복의 흐름은 생각에서부터 시작이 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라고 했습니다. []는 생각에서 나옵니다.

그 악인의 꾀가 죄인의 길로 가게 만들고 오만한 자의 자리로 흐르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흐름이 두 갈레로 갈라지게 하고 있습니다.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는 삶으로 가는 생각이 있고(1:3)

바람에 나는 겨로 가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1:4)

전적 여러분의 몫입니다. 생각 관리 잘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1:6)

 

왜 남들은 문제가 없는데 나는 문제거리가 되나요?

왜 남들은 은혜을 받고 있는데 왜 나는 시비거리가 되게 하는가요?

왜 남들은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는데 왜 나는 그렇게 불만이고 불평이고 화나게 되는 가요?

스스로 잘 분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내 안에 사무엘의 흐름이 있고 엘리의 두 아들이 흐름이 있습니다.

 

둘째는 더 이상의 변명이 없기 바랍니다.

 

어느 분은 아버지 엘리 제사장이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엘리가 기도를 안해서 그렇다. 자녀 교육을 제대로 못 해서 그렇다.

자녀를 방치해서 그렇다. 별 말들을 다 할 것입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다 컸습니다. 아버지가 이 나이기 되도록 제사장의 자리를 지켜

준것만 해도 훌륭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 아버지 때문에 그렇다고요

장가들고 아기까지 낳고 있는데 여전히 아버지만 탓할 것인가요?

 

그럼 사무엘은 어떤 가요? 사무엘 3살입니다.

엄마 한나는 일년에 한번 만나가는 엄마입니다.

사무엘 어린 나이에 엘리 제사장 앞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형님들이라고 하는 엘리의 아들들이 옆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우린 사무엘이 무엇을 보면서 자랐겠나요?

스스로의 삶입니다.

더 이상 남탓하지 말고 내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영적 흐름을 잘 분별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 바랍니다.

 

* 삶에의 적용 *

 

1. 나는 엘리의 아들의 흐름인가? 아니면 사무엘의 영성의 흐름인가 살펴보기 바랍니다.

2. 사무엘의 흐름을 타기 위해서는 기도가 절대적일 것입니다.

기도하여 흐름을 바꾸어 본 아름다운 간증이 있다면 적어 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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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와 부닌나의 영적 흐름 (by g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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