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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와 부닌나의 영적 흐름

green2021.09.16 11:50조회 수 220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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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나와 브닌나의 영적 흐름

 (사무엘 상 14-5)

 

 

4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 아내 브닌나와 그 모든 자녀에게 주고

5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니

6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므로

그 대적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케 하더라

 

 

제가 지난 주간에 영화 [the father]라는

영화를 카톡으로 보내 드렸습니다.

조금은 걱정이 됐습니다.

치매 아버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혹시 이 영화를 보시고 크게

상심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영화를 다른 각도보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21년도 남우주연상과 각색상을 받은 영화입니다.

지금까지 치매를 밖에서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치매걸린 아버지의 뇌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 것입니다.

치매 아버지의 시각으로 보게 만든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착각하게 할 만큼 혼돈스럽게 했습니다.

 

 

치매 아버지는 런던에 살고 있고 자신의 아파트에서 편히 지냅니다.

늘 옆에서 도와주던 딸이 갑자기 프랑스 파리로 떠난하고

하더니 안 갈 것이라고 합니다.

이미 10년전에 이혼한 사위가 지금 딸과 함께 다가 옵니다.

아벚는 딸 사위를 몰라 봅니다.

아버지는 혼란스려워 합니다.

나중에는 딸 자체에 대해서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혼란스려워 합니다.

간병인들도 필요없다하면서 별로 맘에 안들어 합니다.

스토리는 이렇게 진행이 됩니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서 담당 간호원이

딸은 이미 4개월전에 프랑스 파리로 이사 간 것을

알려 줍니다. 그 증거로 딸의 보내온 엽서를 전해 줍니다.

그리고 자신은 양로 병원에 들어와 산지

벌써 몇 주가 지난 것입니다.

 

그 동안의 이야기는 자신의 치매적 상황에서

스스로 생각 속에서 만들어낸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나오는 사위도 양로병원의 의사였고

간병인들도 양로병원의 직원들이었습니다.

딸조차도 간호사의 얼굴과 혼동이 되었습니다.

어느 것이 실상이고 어느 것이 허상인지 모릅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모릅니다.

아니 나 조차도 스스로 확신할 수 없다고 하면서

나는 누구냐고 물어 봅니다.

아버지는 지금 그런 현실을 인식하는 순간

한없이 무기력해 집니다. 절망감을 느낌니다.

난 낙엽같이 떨어져 가는데 어디로 가야하느냐고 호소합니다.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린애같이 울기 시작합니다.

간호사는 아버지를 품에 안아주면서

아버지는 간호사의 품에 안기면서 영화는 마치게 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노후의 치매가 아니라 인생 자체가 치매적 삶을

사는 인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사고의 틀 안에 갇혀서 스스로 만든

무대 위에서 치매적 삶을 사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어디까지가 실상이고 어디까지가 허상인지를 헷갈릴수가 있습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분별이 안됩니다.

전도서에서는 미친 마음이 있다고 합니다.

- 하는 순간 머리가 돌아 갑니다.

그 다음에는 화와 분노 혈기와 폭언

그리고 원망 불평으로 밤을 지내웁니다.

이런것들이 연결되면서 어둠과 분노와 병으로 몰아 갑니다.

그리고 나정에 제 정신이 나면 [내가 미쳤지] 합니다.

 

치매란 기억력의 차이일 뿐입니다.

아이큐 150의 기억력속에서도 치매는 있고

노후의 90의 아이큐속에도 치매는 있습니다.

다만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그 사고 틀안에 갇혀 사는 것이

나의 모습이고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오늘 엘가나의 가정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엘가나는 잘못된 구조의 가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일부 다처제의 구조입니다.

그래서 엘가나는 좋은 사람 정상적인 사람임에도 불과하고

아내들 한나와 브닌나의 불화 속에서 가정을 꾸려야 했습니다.

이것이 엘가나의 한계였습니다.

후회도 많이 했을 것입니다. 탄식도 많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정의 구조를 지켰어야 했습니다. 일부 일처의 성경적 가정입니다.

그 시대의 관습이니 전통이니 뭐라고 해도 이것이 엘가나의 한계일 뿐입니다.

 

 

[한나]라는 여인이 있습니다. 조광지처였습니다. 본처였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자녀를 낳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나의 고통이었습니다. 남편은 위해 주지만

위로가 되지 못하는 것이 한나의 한계였습니다.

그리고 후처에게 당하는 고통도 심했습니다.

 

 

브닌나라는 여인이 있습니다. 후처입니다. 그런데 자녀가 많았습니다.

브닌나는 축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브닌나는 듬직한 자녀들을 배경으로 행복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브닌나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브닌나가 한나를 격동케 합니다. 격동의 뜻은 괴롭게 했다. 고통스럽게 했다.

비웃고 조롱함으로 한이 맺히게 했다는 뜻입니다.

부닌나는 한나를 그렇게 힘겹게 했습니다.

 

 

오늘 사무엘 상에 등장하는 인물 3명을 보게 됩니다.

남편 엘가나 아내 한나 그리고 후처 브닌나입니다.

남편을 두고 서로 다툼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잘 분간이 안됩니다.

누가 잘했고 누가 못 했는지 잘 분간이 안됩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은 치매적 삶을 사는 사람인지 모릅니다.

다를 불행하고 어려운 인생의 길을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예배하려 가는 좋은 일 앞에서 서로 울고 불고 격동케 하고 그 사이에서

남편 엘가나는 절쩔 매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브닌나에 대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부닌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행복한 존재였습니다.

후처지만 자녀들이 있음으로 강한 자가 됐습니다.

그럼 이런 축복과 행복과 강한 것을 가지고

약한 자를 섬겼어야 했습니다.

배려하고 이해하고 포옹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것을 가지고 약한 한나를 격동하게

하나요? 이것이 부닌나의 한계였습니다.

있으면 더 많이 섬겨야 합니다.

받았으면 더 많이 배려하고 퐁옹하며 나눌 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15:1-2)

 

 

이것이 덕목이라고 한 것입니다.

덕목이란 미래의 축복으로 가는 디딤돌입니다.

그런데 브닌나를 그것을 하지 못 하고

스스로 미래의 축복을 저버린 것입니다.

 

 

한나에 대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한나는 참 많이 힘이 들었습니다. 그 남편이 말합니다.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뇨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삼상1:8)

 

 

여호와의 집에 올라 갈 때 마다 브닌가가 격동케 한 것입니다.

한나는 슬펐습니다. 안으로 응어리가 서려 있었습니다.

 

이제 여기서 한나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합니다.

왜요 그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미래의 축복으로 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려분 이제 이런 배경에서 몇 가지의 영적 교훈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영적 흐름을 잘 분별하게 되기 바랍니다.

 

 

인생에 흐름은 있습니다.

도막 도막 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인생은 흘러가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어느 방향으로 흐르는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흘러가는 이 흐름이 미래의 복으로 가는 흐름인가?

아니면 미래의 불행으로 가게 하는 흐름인가를 잘 살펴봐야 합니다.

육의 생각은 파멸과 사망으로 간다고 했고

영의 생각의 흐름은 평강과 생명과 축복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1장에서의 한나의 흐름이 2장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브닌나는 그 이상 안 나옵니다.

브닌가는 복의 흐름이 끝이납니다.

한나는 복의 흐름을 타고 축복으로 이어집니다.

 

성경은 네 마음을 지키라고 합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4:23)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악인의 꾀라고 하는 꾀는 생각을 지칭합니다.

다시 말하면 생각 관리를 잘 하라는 것입니다.

악인의 흐름은 생각에서부터 흐른다는 말씀입니다.

 

 

둘째 한나의 흐름을 보기 바랍니다.

 

 

실로 교회당에 갔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기도막사로 가서 다들 함께 먹고 마시면서

성도의 교제와 친교를 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때 한나를 살짝 빠져나옵니다.

그리고 본당의 제단으로 올라갑니다.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그 의자에 앉았더라(1:9)

 

 

그리고 제단에 엎드려 기도를 하기 시작합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1:10)

12절에는 오랫동안 기도를 했다고 했습니다.

한나의 흐름속에서는 힘이 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울 때

기회를 틈타 주의 전에 올라가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43:1)

 

 

속이 상하지요? 분통이 터지지요?

마음이 막 눌리지요? 격동케 하는 환경이 되고 있지요?

이때 이것 가지고 세상 친구 만나러 가지 마시고

사람에게 속풀이하려고 하지 마시고

기회를 틈타 주님 앞으로 가지고 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내가 어느 흐름를 타고 흘러갈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또 하나있습니다.

이제 제단에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비판하고  대적의 논리가 들어섭니다.

반론의 제기를 합니다..

뜻밖의 훼방 자가 나타난 것입니다.

누구인가요? 엘리목사님이십니다.(제사장)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동하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1:12-13)

 

 

여러분 취한 줄로 생각했다고 했지요?

이것이 어떤 형태로 발전하는지 아시는지요?

생각이 전해지고 전해 지면서 누군가의 입술을 통해서

전해질 때는 술먹고 취한여자로

전달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군수군 이라고도하고 험담이라고 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뻥 튀기어져서 전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젠 완벽하게 술취한 여자로 말해지게 됩니다.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1:14)

이제 그렇게 인정하고 확신하고 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때의 반응이 어떨까요?

내가 이런 경우를 당할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속으로 충격을 받고 내면으로 시험이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분은 따지려 드는 분이 있습니다.

어느 분은 그냥 교회를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런 목사가 다 있어?] 

[기도하는 나 보고 술취한 여인이라고?]

그날부터 교회를 안 나오는 분도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은가요?

한나는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요?

이게 흐름입니다. 순간의 반응입니다.

내가 어떤 흐름을 타느냐의 문제입니다.

한나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 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음을 인함이니이다(1:15-16)

 

 

여러분 우리가 치매적 인생을 살지 않으려면

잘 분별이 필요합니다.

지혜롭게 처신해야 합니다.

한나는

진솔했습니다. 그리고

투영했습니다.

그대로 자신의 마음을 열어서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 자신이 많이

③ 얼마나 힘이  들고 슬프고 어려운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얻어진 결과가 무엇인가요?

사람의 마음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제사장)의 마음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엘리가 대답하여 가로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1:17).

 

 

한나의 답변을 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으니라(1:18)

 

 

사람의 마음을 얻잖아요?

그리고 얼굴에 수심이 없찮아요?

저는 상처 받았다는 말 별로 좋아 하지 않습니다.

깨긋이 잊잖아요?

그리고 수심이 없는 얼굴로 살잖아요?

막힌 담이 없습니다. 깨끗합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예배당에 가서 몰래 기도하고 난 후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다.

스스로도 모를 은혜가 넘친 것입니다.

굉장히 안정이 마음이 됐습니다.

남모르는 즐거움이 있고 희락이 넘칩니다.

그리고 며칠 지난 후 놀라운 응답을 받게 됩니다.

임신의 소식입니다. 바로 이 아이가 사무엘이 된 것입니다.

한나가 잉태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1:20)

 

 

저는 이번에 영화 파더을 본 후에

다시금 스스로 다짐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노후입니다.

이제 중년을 넘어 노후의 시대로 가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다짐하는 것은

기도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노환도 질병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힐링(Healing) 안에 노후의 모든 질병도 치료가 된다는

확신입니다. 십자가의 대속 안에 있는

그 피가 우리의 모든 질병을 담당했음을 믿습니다.

우리의 노후도 정신도 마음도 육체도 강건해질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그래서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그냥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여전히 주님께 의탁하고 기도의 삶을 살아가자고 권면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한나의 영성을 배우자는 것입니다.

막힌 담을 풀자는 것입니다.

스스로 웬수를 맺지 말고 살자는 것입니다.

술취한 여인으로 몰아가는 사탄의 전략에 말려드지 말고

은혜롭게 풀어가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편쉽입니다.

단순하고 편하게 쉽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담백하게 수심이 없이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더 좋아질 것입니다.

모든 것이 생각보다 훨씬 더 나아질 것입니다.

 

 

흐름을 잘 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순간 순간 고비마다 영의 흐름을 타고

은혜롭게 덕스럽게 잘 헤쳐나가고

잘 이겨 나가는 우리 모두가다 되기를

주님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삶에의 적용 *

 

 

1. 누군가가 나에게 언제까지 술 취하겠는가?

이런 종류의 말을 할 때의 나의 반응을 적어 보세요

2. 한나와 같이 오히려 그런 사람의 마음을 얻어 본 경험을

구체적으로 사례를 적어 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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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사무엘과 엘리의 아들들의 영적 흐름 (by g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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